마태복음3:5~12. " 물과 불의 세례 "
11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는 물 세례와 불 세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 세례는 세례 요한이 행하였고 죄를 알게하며 죄와 분리의 필요성을 알게합니다.
불 세례는 예수님께서 행하셨고 죄를 단절하며 죄와 분리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며 세례는 받았는데 행실이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례는 받았지만 죄를 단절하고, 분리가 되지 않았기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가지(물 세례, 불 세례)가 다 연결 되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세례가 되어지는 것 입니다.
6절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자복은 죄를 아는 것 이지만 회개는 죄에 대해 돌이키는 것 입니다. 여기서의 세례는 요단강에서 자신의 죄를 알고 깨닫는 정도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7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 당시 유대지도자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입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의 대가들이며 회당 중심이었기에 도시에 모여 있었고, 사두개인은 제사 중심이었기에 성전을 중요시 하며 부활과 천국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 이들은 기득권이었기에 많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많은 에세네파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모이고 또 요단강에서 세례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보려고 이 자리에 왔던 것 입니다.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이러한 위선적인 모습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유대의 지도층으로서 기득권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오늘 세례 장면을 보러 왔는지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주변국가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의 첫 번째는 화려한 솔로몬 성전입니다. 이러한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페르시아 때에 재건되지만 헬라시대에 파괴됩니다.
그 후에 마카비 성전을 지었지만 로마에 의해 파괴 됩니다. 이 시대에는 성전이 없었기에 사두개인 보다는 바리새인의 힘이 더 강력할 때 입니다.
로마 집권기에 헤롯이라는 에돔사람이 로마에게 인정받아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로마를 설득하여 헤롯성전을 건축합니다.
헤롯성전 때 부터는 바리새인보다 사두개인의 힘이 강력해집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 자체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것을 아셨기에 그 헤롯성전이 타락하므로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뒤엎은 것 입니다.
(마태21:12~13, 마가11:15~17, 누가19:45~46, 요한복음2:13~16)
AD70년경 헤롯성전은 다시 파괴되고 맙니다.
(창세기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땅을 히브리어 “아다마” 라 하며 흙(먼지,티끌)을 “아파르” 라 합니다.
아파르는 인간에게만 있고 동물에게는 없는 것이므로 인간만이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낄수 있는 것 입니다.
그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생기를(히브리어 느샤마)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히브리어 네페쉬하야) 되니라.
즉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 허무하고 연약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어 생령이 된 것 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호흡으로 살아가야만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율법과 사두개인의 제사는 아다마와 아파르에 머물러 있기에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입니다.
이들의 인생은 하나님의 호흡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인생이었던 것 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인 느샤마가 있어야 비로소 생령인 네페쉬하야가 되는 것 입니다.
Present 는 현재라는 뜻과 선물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가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것 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현재에 하나님의 호흡인 느샤마가 들어와 온전한 생령인 네페쉬하야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태복음3:5~12. " 물과 불의 세례 "
11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는 물 세례와 불 세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 세례는 세례 요한이 행하였고 죄를 알게하며 죄와 분리의 필요성을 알게합니다.
불 세례는 예수님께서 행하셨고 죄를 단절하며 죄와 분리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며 세례는 받았는데 행실이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례는 받았지만 죄를 단절하고, 분리가 되지 않았기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가지(물 세례, 불 세례)가 다 연결 되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세례가 되어지는 것 입니다.
6절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자복은 죄를 아는 것 이지만 회개는 죄에 대해 돌이키는 것 입니다. 여기서의 세례는 요단강에서 자신의 죄를 알고 깨닫는 정도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7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이 당시 유대지도자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입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의 대가들이며 회당 중심이었기에 도시에 모여 있었고, 사두개인은 제사 중심이었기에 성전을 중요시 하며 부활과 천국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 이들은 기득권이었기에 많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많은 에세네파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모이고 또 요단강에서 세례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보려고 이 자리에 왔던 것 입니다.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이러한 위선적인 모습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유대의 지도층으로서 기득권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오늘 세례 장면을 보러 왔는지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주변국가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성전의 첫 번째는 화려한 솔로몬 성전입니다. 이러한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페르시아 때에 재건되지만 헬라시대에 파괴됩니다.
그 후에 마카비 성전을 지었지만 로마에 의해 파괴 됩니다. 이 시대에는 성전이 없었기에 사두개인 보다는 바리새인의 힘이 더 강력할 때 입니다.
로마 집권기에 헤롯이라는 에돔사람이 로마에게 인정받아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로마를 설득하여 헤롯성전을 건축합니다.
헤롯성전 때 부터는 바리새인보다 사두개인의 힘이 강력해집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 자체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것을 아셨기에 그 헤롯성전이 타락하므로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뒤엎은 것 입니다.
(마태21:12~13, 마가11:15~17, 누가19:45~46, 요한복음2:13~16)
AD70년경 헤롯성전은 다시 파괴되고 맙니다.
(창세기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땅을 히브리어 “아다마” 라 하며 흙(먼지,티끌)을 “아파르” 라 합니다.
아파르는 인간에게만 있고 동물에게는 없는 것이므로 인간만이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낄수 있는 것 입니다.
그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생기를(히브리어 느샤마)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히브리어 네페쉬하야) 되니라.
즉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 허무하고 연약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어 생령이 된 것 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호흡으로 살아가야만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율법과 사두개인의 제사는 아다마와 아파르에 머물러 있기에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입니다.
이들의 인생은 하나님의 호흡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인생이었던 것 입니다. 하나님의 호흡인 느샤마가 있어야 비로소 생령인 네페쉬하야가 되는 것 입니다.
Present 는 현재라는 뜻과 선물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가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것 입니다.
선물로 주어진 현재에 하나님의 호흡인 느샤마가 들어와 온전한 생령인 네페쉬하야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